효비(2004-08-25 06:11:36, Hit : 3662, Vote :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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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좋아하는 이것

2004년 3월 한겨례신문에 실린 칼럼인데
지하철에서 읽다가 맘에 들어서
4호선 계단을 올라오며 찢어서 책사이에 끼워두었다.
몇달후 발견하게되어 반가워서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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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과 진실의 거리
  - 안철수(안철수연구소 대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남들에게 오해를 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
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정반대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내 진심을 몰라준다고 혼자 섭섭해하거나,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리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상대방이 믿어주지 않아서
억울해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퍼셉션 이즈 리얼리티’(Perception is Reality)라는 말이 있다.
인식되는 것이 진실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언뜻 들으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상식적으로 진실과 그에 대한 인식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떠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그 사실을 해석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보는 사람마다 인식이 다를 수 있다.

과장된 예로 같은 책을 읽은 초등학생과 대학교수의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듯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 간의 오해도 이러한 인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회는
사람들이 느끼고 인식하는 것에 기초하여 관계가 규정되고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들의 인식이 진실과 거리가 있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상호작용이 벌어지는 것이 사회의 속성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인식과 진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인식은 진실의 힘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인식은 진실’이라는 말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진실이라 할지라도,
주위에서 모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실로서 구실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 점수가 나쁘면 실력 없는 사람 취급을 받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험을 잘 못 치른 사람이 답안을 하나씩 내려쓰는 실수를 했을 뿐이지
실제 실력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사회생활에서 나를 규정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내가 아닌, 상대방이 인식하는 나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마케팅 이론 중의 하나로 ‘포지셔닝’ 이론이 있다.

사람들 마음 속에는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상품들에 대한 순위가 매겨져 있으며,
일단 매겨진 순위는 바뀌기 힘들다는 것이다.

즉, 한 상품 또는 브랜드가 일단 사람들의 마음 속에 1등으로 자리잡은 다음에는,
실제 내용상으로 그 상품이 다른 상품과 별로 차이가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 상품이 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이 이론이 적용되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포지셔닝 이론 역시 ‘인식은 진실’이라는 말을 마케팅에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위에서 자신에 대해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에는,
아무리 조목조목 사실을 나열하고 설명을 하더라도 일단 자리잡은 인식은 바꾸어지기 힘들다.
인식은 말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자리잡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상대방이 잘못 알고 있다고 해서 억울해하고 상대방에게 불평을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서로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이 존재하고 있다.
개인 간, 이해집단 간, 그리고 국가와 국민 간 모두에서 이러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보다는
말이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말만으로는 이미 자리잡은 인식을 바꾸기 힘들며,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만 계속 반복되면
오히려 가장 중요한 신뢰감마저 상실될 수 있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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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약초와 독초
  -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이번 여름휴가는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보냈다.
보통 1박2일 길어야 2박3일 걸리는 45㎞ 주봉 종주길을
꼬박 나흘 동안 걸었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긴 '게으른 산행’을 택했기 때문이다.

(중략)


이렇게 천천히 걷다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도 보였다.

곳곳에 붙은 경고문이 그렇다.
"지리산은 약초와 비슷한 독초가 많으니 산나물 약초 채취를 일체 금합니다.”

세석산장 등산로에서 본 푯말에도 이런 글이 있었다.
“진달래와 철쭉은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진달래는 흔히 먹는 꽃이나, 철쭉은 먹으면 눈이 먼다.”

또한 취나물 중에서도 제일 맛있다는 곰취나물과 흡사한 어떤 이파리는,
먹으면 급사할 만큼 맹독성이 있다고 한다.

모두 겉보기가 비슷하다고,
사이비를 먹으면 큰일나니까 주의하라는 말이다.


사이비(似而非),
글자 그대로 비슷하나 다른 것이다.
그 다르기의 정도가 약초와 독초처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
사이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모든 사이비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진짜보다 더 현란하고 더 보기 좋고 더 진짜 같다.
사이비 옆에서는 진짜가 훨씬 초라해 보인다.

사이비의 본질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니 속지 않으려면 평소에 진위를 가려내는 감식안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진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진짜와 사이비라..

그럼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소박한 진짜인가, 현란한 사이비인가?

사이비에 속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사이비가 되어 남을 현혹시키고 싶지도 않다.
아니 그렇게 사는 건 죽어도 싫다.


그러나 고백컨대
무르익지 않는 생각이나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얘기할 때,
쓸데없이 나는 말이 많아진다.

미사여구도, 예화도 인용구도 많이 쓰면서 문장을 현란하게 만든다.
잘 모르는 것을 덮기 위한 일종의 교란전술인데,
지금 보니 이게 바로 사이비의 특징이 아닌가?

반대로 내가 확실하고 분명하게 아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주어와 목적어만으로도 뜻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간단명료하고 소박하게 말이다.


그러니 사이비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정말 정확히 알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일만 쓰고 말해야 한다.
할말이 없을 때는 입을 다물 줄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우선 ‘진짜’의 시작은 되는 게 아닐까?




별잔치, 꽃잔치와 더불어 게으른 종주산행이,
내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보너스까지 주었다.

역시 지리산이다!






△ 친절한 롯데제과 직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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